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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론

임화의 한설야론

한설야론(韓雪野論) 소설「過渡期[과도기]」를 쓸 때까지 雪野[설야]는 아직 자기의 세계를 갖지 않었었다. 자기의 세계란 것은 작가가 독창적 가치를 창조하는 유일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젊은 작가가 文學史[문학사] 위에다 제 이름을 기입하는 유일의 방법은 항상 새 세계를 발견하는데 있었다. 새로운 세계란 물론 기존의 문학 영역이 모르던 세계다. 이 새 세계가 발견되지 않으면 작가들은 낡은 세계의 糟粕[조박]으로 만족치 않을 수 없으며, 독창 대신에 모방이 문학의 주류가 되는 것이다. 雪野[설야]는「過渡期[과도기]」를 쓰기 전에도 물론 경향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시의 많은 청년들과 더불어 몇해 전 曙海[서해]가 개척해 놓은 세계 가운데를 齷齪[악착]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았다. 「過..
한설야론(韓雪野論)

소설「過渡期[과도기]」를 쓸 때까지 雪野[설야]는 아직 자기의 세계를 갖지 않었었다. 자기의 세계란 것은 작가가 독창적 가치를 창조하는 유일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젊은 작가가 文學史[문학사] 위에다 제 이름을 기입하는 유일의 방법은 항상 새 세계를 발견하는데 있었다.
새로운 세계란 물론 기존의 문학 영역이 모르던 세계다. 이 새 세계가 발견되지 않으면 작가들은 낡은 세계의 糟粕[조박]으로 만족치 않을 수 없으며, 독창 대신에 모방이 문학의 주류가 되는 것이다.
雪野[설야]는「過渡期[과도기]」를 쓰기 전에도 물론 경향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시의 많은 청년들과 더불어 몇해 전 曙海[서해]가 개척해 놓은 세계 가운데를 齷齪[악착]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았다.
「過渡期[과도기]」가 발표된 것은 29년 초인데, 그때까지 曙海[서해]의 도달점은 조선문학에 있어 하나의 넘을 수 없는 한계가 되었었다.
임화(林和)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8월 6일
시인·평론가·문학운동가.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서울 출생.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에 중퇴.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1928년에 박영희(朴英熙)와 만났으며, 윤기정(尹基鼎)과 가까이 하면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
1929년에는 「우리 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順伊)」·「어머니」·「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발표.
시집 『현해탄(玄海灘)』·『조선신문학사』 간행, 출판사 ‘학예사’ 운영,
1946년 2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7년 11월에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노선의 민전의 기획차장으로 활동.
월북 후에는 6·25까지 조·소문화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일하였다.
1953년 8월에 남로당 중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였다.
시집으로는 『현해탄』(1938)·『찬가(讚歌)』(1947)·『회상시집(回想詩集)』(1947)·『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 ,
평론집으로는 『문학의 논리』(194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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