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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강좌

권구현의 미술강좌

원래 회화의 구도라는 것은 그 내용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미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찰 방법을 요하는 것이나 순록시대(馴鹿時代) 회화의 구도는 그 대체가 구도적 의도를 잃은 순간적, 충동적, 사실적 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술한 것과 같은 점으로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서 작자의 주관적 활동을 허용할 수 있는 일면이 있습니다. 화면에서 폭로(曝露)한 형식미에 대한 그네들의 감각은 ‘병렬주의’와 ‘공극(空隙)의 공포’로 전자는 자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화면의 공지가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간극 없이 물상을 그리어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 말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형식미로 보아서는 초등정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하겠지만 그네들이 화면 관계에 대하여 전혀 무경착(無頃着)이..
원래 회화의 구도라는 것은 그 내용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미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찰 방법을 요하는 것이나 순록시대(馴鹿時代) 회화의 구도는 그 대체가 구도적 의도를 잃은 순간적, 충동적, 사실적 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술한 것과 같은 점으로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서 작자의 주관적 활동을 허용할 수 있는 일면이 있습니다. 화면에서 폭로(曝露)한 형식미에 대한 그네들의 감각은 ‘병렬주의’와 ‘공극(空隙)의 공포’로 전자는 자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화면의 공지가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간극 없이 물상을 그리어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 말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형식미로 보아서는 초등정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하겠지만 그네들이 화면 관계에 대하여 전혀 무경착(無頃着)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균제의 미도 다소 알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본위인 그네들의 회화에서는 표현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권구현
(權九玄)
1898년 ~ 1944년
충청북도 영동 출신. 본명은 권구현(權龜鉉). 아호(雅號)는 흑성(黑星). 이 밖에도 천마산인이란 필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26년 평론 「무산계급의 예술」과 시조작품 및 기타를 『시대일보』·『조선지광』·『동아일보』·『중외일보』 등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조직에 가담하여 부르주와 예술과 형이상학을 비판했으나, 곧바로 전환하여 김화산(金華山) 등이 주도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문학의 편에 서서 카프파와 논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의 시작품은 시조와 단곡(短曲 : 짧은 악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27년 영창서관에서 간행한 단독 사화집(詞華集)인 『흑방(黑房)의 선물』에는 「님 타신 망아지」 이하 50수의 시조작품과 「영원의 비애」 이하 46편의 단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조라는 형식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일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를 뜨겁게 나타내면서 응축된 표현의 묘미를 긴장되게 갖추고 있었다.”고 한 김용직(金容稷)의 말과 같이 권구현이 시도한 시조와 단곡 형식은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나키즘 사상이 언제나 우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내용과 기법을 일체화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폐물(廢物)」(별건곤, 1927.2)과 「인육시장점묘(人肉市場點描)」(조선일보, 1933.9.28∼10.10.) 등 2편의 단편소설과 많은 평론과 수필을 지상에 발표하였다.
그는 서화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는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여러 번 입선하였고, 개인전도 몇 차례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미술평론에도 일가견을 이루어 「선사시대의 회화사」(『동광』, 1927.3∼5.)를 위시하여 몇 편의 미술평론과 단평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구현 [權九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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