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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론

임화 평론

몇해 전 어느 文藝雜誌[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隨筆[수필]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文學[문학], 이를테면 詩[시]나 小說[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장르’로서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盛旺[성왕]해 감으로 문학하 는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 데다가 多分[다분]의 정력을 傾注[경주]해서 足[족]한지 아니한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지음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 비하면 수필의 성질이 꽤 변했고, 鷺山[노산] 같은 이는 이런 종류의 單..
몇해 전 어느 文藝雜誌[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隨筆[수필]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文學[문학], 이를테면 詩[시]나 小說[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장르’로서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盛旺[성왕]해 감으로 문학하 는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 데다가 多分[다분]의 정력을 傾注[경주]해서 足[족]한지 아니한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지음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 비하면 수필의 성질이 꽤 변했고, 鷺山[노산] 같은 이는 이런 종류의 單行本[단행본] ── 만일 紀行[기행]도 수필 속에 넣는다면 ── 까지를 數三種[수삼종]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現像[현상]만을 가지고 우리 문단에 수필이 새로운 地步[지보]를 요구할 만큼 성장했다든가, 수필을 論[논]하는 게 이미 불가결의 과제가 되었다든가 하면 물론 하나의 성급한 과장임을 免[면]키 어려울 것이다. 헌데 도대체 수필이라는 것을 어떤 것을 가르켜 이름이냐 하면 우리는 곧 이것이다 하고 즉석에서 집어 보일 만한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함이 또한 수필의 수필다운 곳이 아닌가 한다.

임화(林和)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8월 6일
시인·평론가·문학운동가.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서울 출생.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에 중퇴.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1928년에 박영희(朴英熙)와 만났으며, 윤기정(尹基鼎)과 가까이 하면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
1929년에는 「우리 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順伊)」·「어머니」·「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발표.
시집 『현해탄(玄海灘)』·『조선신문학사』 간행, 출판사 ‘학예사’ 운영,
1946년 2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7년 11월에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노선의 민전의 기획차장으로 활동.
월북 후에는 6·25까지 조·소문화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일하였다.
1953년 8월에 남로당 중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였다.
시집으로는 『현해탄』(1938)·『찬가(讚歌)』(1947)·『회상시집(回想詩集)』(1947)·『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 ,
평론집으로는 『문학의 논리』(194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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