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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의 변천

안확의 조선문학의 변천

조선문학사를 수탐하여 봄에는 먼저 그의 재료를 수합함에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고래 인사의 심전(心田)에서 피어난 미적 감정이 단순치 아니할 것은 짐작하여도 알 것이요, 그를 기록하여 물려오는 문적(文籍)도 또한 형형색색으로 그 수가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허다 복잡한 재료를 모두 사득(査得)하여야 비로소 왕고문학(往古文學)의 진상을 꿰뚤어 얻을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오늘날에 앉아서 고래의 문적을 구하기는 대단히 곤란한사정이다. 고사에 대한 재료 취집이 용이치 못함은 오직 문학사(文學史)뿐 아니라 일반 사적(事蹟)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하되 그중에도 문학사 재료가 맹랑하게 사실(査實)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이는 무슨 연유냐 하면, 첫째 고래 문학상 관념의 변천에 따라 흐지부지로 산..
조선문학사를 수탐하여 봄에는 먼저 그의 재료를 수합함에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고래 인사의 심전(心田)에서 피어난 미적 감정이 단순치 아니할 것은 짐작하여도 알 것이요, 그를 기록하여 물려오는 문적(文籍)도 또한 형형색색으로 그 수가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허다 복잡한 재료를 모두 사득(査得)하여야 비로소 왕고문학(往古文學)의 진상을 꿰뚤어 얻을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오늘날에 앉아서 고래의 문적을 구하기는 대단히 곤란한사정이다. 고사에 대한 재료 취집이 용이치 못함은 오직 문학사(文學史)뿐 아니라 일반 사적(事蹟)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하되 그중에도 문학사 재료가 맹랑하게 사실(査實)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이는 무슨 연유냐 하면, 첫째 고래 문학상 관념의 변천에 따라 흐지부지로 산망(散亡)하여진 때문이다. 고래 학자는 각기 소견에 따라 문학을 문예품·덕화물(德化物) 또는 이화물(理化物)로 뜻을 두어 온 것이다.
안확
(安廓)
1886.2.28 ~ 1946
호 자산(自山). 필명 운문생(雲門生) ·팔대수(八大搜). 서울 출생.
1895년 서울 수하동 소학교를 다녔고, 1896년 발족한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900년대 후반에 서북지방 교육활동에 참여, 1910년 이후에는 마산 창신(昌信)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16년경 다시 마산으로 돌아와 윤상로(尹相老) ·이시영(李始榮) 등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활동.
1921년 조선청년회 기관지 《아성(我聲)》의 편집인, 이듬해에는 신천지사(新天地社)의 편집인이 되었다.
1928년부터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음악 및 국문학 관계의 방대한 왕실 소장 자료들에 접하여
훈민정음의 악리(樂理) 기원설 제시, 가시(歌詩) 장르 설정(삼대목체 ·정읍체 ·첩성체 ·경기체 ·장편 ·시조) 등의 업적을 남겼다.
《조선문법(朝鮮文法)》(1917)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1919) 《자각론(自覺論)》(1920)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1922)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 일명 조선정치사)》(1923) 《시조시학(時調詩學)》(1940)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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