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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선생방랑기

김상용의 무하선생방랑기

우리에게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로 많이 알려진 김상용의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 우리에게는 한때 마음놓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申丹齋[신단재]선생이 말씀한 ‘任情歌哭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에 넘치는 비통에 우리는 벙어리(狂夫[광부])가 아니 될 길이 없었다. 無何[무하]는 이렇던 한 시절의 소산이었으니 그는 곧 者[자]의 모습이자, 독자제언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는 미쳐, 혹은 거짓 미친 체로 天外隻驅[천외척구], 가엾은 나귀 하나를 벗삼아, 방랑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광태와, 狂行[광행]과 광언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君子[군자] 다만 그의 광증 속에 그의 告[고]하려던 울분과 비애를 읽어주시면, 필자의 소망은 이루었다 하리라. 四二八三年[사..
우리에게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로 많이 알려진
김상용의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

우리에게는 한때 마음놓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申丹齋[신단재]선생이 말씀한 ‘任情歌哭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에 넘치는 비통에 우리는 벙어리(狂夫[광부])가 아니 될 길이 없었다. 無何[무하]는 이렇던 한 시절의 소산이었으니 그는 곧 者[자]의 모습이자, 독자제언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는 미쳐, 혹은 거짓 미친 체로 天外隻驅[천외척구], 가엾은 나귀 하나를 벗삼아, 방랑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광태와, 狂行[광행]과 광언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君子[군자] 다만 그의 광증 속에 그의 告[고]하려던 울분과 비애를 읽어주시면, 필자의 소망은 이루었다 하리라.
四二八三年[사이팔삼년] 二月[이월] 筆 者[필자]
김상용

1902년 8월 27일 ~ 1951년 6월 22일
시인, 영문학자, 교육자
1902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했다. 호는 월파(月波)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21년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졸업 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동아일보』 등에 시를 게재했다.
포(E. A. Poe)의 「애너벨리」(『신생(新生)』 27, 1931.1), 키츠(J. Keats)의 「희람고옹부(希臘古甕賦)」(『신생』 31, 1931.5) 등의 외국문학을 번역·소개했다.
1933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1938년 「남으로 창을 내겠오」를 수록한 시집 『망향(望鄕)』을 출판했다.
1939년 10월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 1941년 9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했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보스턴(Boston)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고,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의 학무처장을 맡았다. 1950년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를 간행했고, 코리아타임즈사의 초대 사장을 역임했다.
1951년 6월 22일 부산에서 식중독으로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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