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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문학사론서설

임화

이글은 신경향파 문학(新傾向派文學)의 역사에 대한 전혀 부당한 수삼(數三)의 논문을 비판의 대상으로 하는 국한된 목적으로 기초된 것이 의외의 방면으로 벌어지고 길어져서 전혀 발표의 사정에 의하여 불손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사론(史論)’에 상응하는 풍부한 내용을 기다린다면 적지 않은 실망을 가질 것을 미리 말해두는 바이다. 필자 병와(病臥) 한지 연여(年餘)에 하등의 자료도 없이 단지 낡은 수첩 일개의 힘을 빌어 이 소론을 여지(旅地)에서 적었으므로 독자는 충분한 양해 밑에 보아주기를 바란다. 오직 우리들의 문학사 연구에 대한 필자 연래의 소회(所懷)의 일단을 기술할 기회를 얻은 바이니 독자의 연구에 자(資) 함이 있으면 만행(萬幸)이라 생각한다.

이글은 신경향파 문학(新傾向派文學)의 역사에 대한 전혀 부당한 수삼(數三)의 논문을 비판의 대상으로 하는 국한된 목적으로 기초된 것이 의외의 방면으로 벌어지고 길어져서 전혀 발표의 사정에 의하여 불손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사론(史論)’에 상응하는 풍부한 내용을 기다린다면 적지 않은 실망을 가질 것을 미리 말해두는 바이다. 필자 병와(病臥) 한지 연여(年餘)에 하등의 자료도 없이 단지 낡은 수첩 일개의 힘을 빌어 이 소론을 여지(旅地)에서 적었으므로 독자는 충분한 양해 밑에 보아주기를 바란다. 오직 우리들의 문학사 연구에 대한 필자 연래의 소회(所懷)의 일단을 기술할 기회를 얻은 바이니 독자의 연구에 자(資) 함이 있으면 만행(萬幸)이라 생각한다.
임화(林和)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8월 6일
시인·평론가·문학운동가.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서울 출생.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에 중퇴.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1928년에 박영희(朴英熙)와 만났으며, 윤기정(尹基鼎)과 가까이 하면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
1929년에는 「우리 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順伊)」·「어머니」·「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발표.
시집 『현해탄(玄海灘)』·『조선신문학사』 간행, 출판사 ‘학예사’ 운영,
1946년 2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7년 11월에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노선의 민전의 기획차장으로 활동.
월북 후에는 6·25까지 조·소문화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일하였다.
1953년 8월에 남로당 중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였다.
시집으로는 『현해탄』(1938)·『찬가(讚歌)』(1947)·『회상시집(回想詩集)』(1947)·『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 ,
평론집으로는 『문학의 논리』(194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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