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0 0 0 62 0 5년전 0

전후삼한고

신채호

조선 최고의 사적(史籍)을 『신지(神誌)』라 한다. 신지(神誌)를 혹은 인명이라 하며 혹은 서명이라 하나, 졸견으로는 신지는 본래 고대의 관명, 삼한사(三韓史)의 신지(臣智) 곧 ‘신치’니, 역대 ‘신치’의 ‘신수두’ 제일(祭日)의 치어(致語)를 모은 것이 있었던가 하니, 그 전서(全書)가 남아 있으면 혹 조선의 호머 시편이 될는지도 모를 것이나, 불행히 신지의 것이라고는, 참 것인지 거짓 것인지도 모를 진단구변도(震壇九[局[국]]變圖)란 이름이 『대동운해(大東韻海)』에 보이며, ‘비사(秘詞)’10구가 『고려사』에 보이며, 그밖에는 유락된 1, 2구가 전할 뿐이요, 고구려의 국초의 『유기(留記)』 100권이니, 이문진(李文眞)의 『신집(新集)』5권이니, 백제 고흥(高興)의 『서기(書記)』니, 신라 거칠부(居..
조선 최고의 사적(史籍)을 『신지(神誌)』라 한다. 신지(神誌)를 혹은 인명이라 하며 혹은 서명이라 하나, 졸견으로는 신지는 본래 고대의 관명, 삼한사(三韓史)의 신지(臣智) 곧 ‘신치’니, 역대 ‘신치’의 ‘신수두’ 제일(祭日)의 치어(致語)를 모은 것이 있었던가 하니, 그 전서(全書)가 남아 있으면 혹 조선의 호머 시편이 될는지도 모를 것이나, 불행히 신지의 것이라고는, 참 것인지 거짓 것인지도 모를 진단구변도(震壇九[局[국]]變圖)란 이름이 『대동운해(大東韻海)』에 보이며, ‘비사(秘詞)’10구가 『고려사』에 보이며, 그밖에는 유락된 1, 2구가 전할 뿐이요, 고구려의 국초의 『유기(留記)』 100권이니, 이문진(李文眞)의 『신집(新集)』5권이니, 백제 고흥(高興)의 『서기(書記)』니, 신라 거칠부(居柒夫)의 『신라고사(新羅古事)』니 하는 것까지도, 그 서명만 우리 귀에 남아 전하고 그 1자가 인간에 유락하지 못하였다.

신채호(申采浩)
1880.11.7~1936.2.21
일제강점기의 사학자,독립운동가.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1880년 11월 7일 충남 대덕 출생.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관직을 포기.
1907년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 등에 가입·참가.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
1911년 권업회를 조직했으며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
1915년 상하이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 박달학원 설립.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며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
1923년 상하이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정부 해체 및 폭력혁명 주장.
1927년 신간회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옥중 순국.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net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