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장군(虎頭將軍) 최영(崔瑩) 씨가 누차 중국·일본 등 외구(外寇)를 모조리 죽여 물리치고 그 백전백승의 남은 위엄을 베풀어 대병(大兵)으로 요양(遼陽)·심양(瀋陽)에 쳐들어가 고구려 옛땅을 회복하려고 하다가 시운(時運)이 불행하여 큰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죽음을 당하였으니, 지금까지 장군의 일을 말하는 이가 강개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지난번에 한 친구가 장군의 시(詩) 2수를 써서 보내주었는데, 그 말이 장결(莊潔)하고 그 어조가 격렬하고 그 뜻이 웅혼(雄渾)하여 족히 장군의 인격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첫째 수는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그 둘째 수는
눈맞아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 마라.
춘풍에 핀 꽃이 매양에 고울소냐.
풍표표(風飃飃) 설분분(雪紛紛)할 제 네야 나를 부르리라.
신채호(申采浩)
1880.11.7~1936.2.21
일제강점기의 사학자,독립운동가.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1880년 11월 7일 충남 대덕 출생.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관직을 포기.
1907년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 등에 가입·참가.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
1911년 권업회를 조직했으며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
1915년 상하이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 박달학원 설립.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며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
1923년 상하이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정부 해체 및 폭력혁명 주장.
1927년 신간회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옥중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