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처봉생(絶處逢生)
숙종대왕 (肅宗大王) 즉위 하신 후 십여년에 경상도 안동부원면 운학동(慶尙道安東府院面雲鶴洞)에 한 사람이 있으되 송은 정(鄭)이오 이름은 박옥(彴玉)이다. 나이 사십에 이르되 슬하에 일점 혈육 없이 부인 유씨로 더불어 자탄 왈 지금껏 자식이 없음은 선영행화 절로 끊어질 터이오니 인자된 도리에 불효 막심 하다 하고 주야로 슬퍼하더니 하늘로부터 한 선관이 백학을 타고 부인 전에 일개 옥동(玉童)을 주고 완연히 올라 가거늘 놀래어 깨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부인이 마음에 기꺼이 여기어 가군을 청하여 몽사(夢事)를 의논 하더니 과연 그날부터 태기 있어 십삭 만에 순산 생남하니 공중으로 한 선녀가 내려와 옥병(玉瓶)으로서 향수를 기우려 옥동을 씻겨 누인후 부인전에 이르되
『이 아이 이름은 수정(壽政)이라, 일후에 귀히 될 아기오니 잘 길러 영화 보라.』
하고 문득 간데 없거늘 부인 양위 전후 몽사와 신기함을 못내 기뻐하였다.
아기 점점 자라매 용모가 비범하여 그 양명한 골격과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인간 인물로 보이지 않더라.
차상찬
(車相瓚)
1887년(고종 24) ~ 1946년
시인, 수필가, 언론인
호는 청오(靑吾). 강원도 춘천 출생.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졸업.
시인 및 수필가로서의 면모는 주로 『개벽(開闢)』을 비롯한 몇몇 잡지에 한시(漢詩)와 수필작품을 발표했다.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해동염사(海東艶史)』(한성도서주식회사, 1931)·『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명성사, 1947)·『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제4권(서정출판사, 1971) 등을 저술하였다.
『개벽』을 비롯하여 『별건곤(別乾坤)』·『신여성(新女性)』·『농민(農民)』·『학생(學生)』 등 잡지의 주간 또는 기자로서 활약.
한시는 주로 「경주회고(慶州懷古)」·「남한산성(南漢山城)」·「관동잡영(關東雜詠)」·「가야회고(伽倻懷古)」 등의 시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역사·유적·명승지에 관한 회고적인 것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