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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화원

안석영 단편소설

책 속으로 해가 중천에 머물자 그 빛이 찬란하였다. 멀리서 푸른 보리밭이 물결치고 있었다. 숲 바로 아래의 잡초가 우거진 곳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풀밭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너른 개울가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낚싯대를 한가로히 물에 담그고 있는 김영철 씨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아들인 명호 군이 낚싯대를 들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직 일곱 살의 어린 나이지만 그의 아버지를 축소시킨 것처럼 두 모습이 판에 박은 듯하였다. 아이의 머리에 얹힌 소학생 모자가 뒤로 젖혀지자 쓸쓸한 눈빛까지도 아버지를 빼닮은 듯하였다.
책 속으로

해가 중천에 머물자 그 빛이 찬란하였다. 멀리서 푸른 보리밭이 물결치고 있었다. 숲 바로 아래의 잡초가 우거진 곳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풀밭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너른 개울가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낚싯대를 한가로히 물에 담그고 있는 김영철 씨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아들인 명호 군이 낚싯대를 들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직 일곱 살의 어린 나이지만 그의 아버지를 축소시킨 것처럼 두 모습이 판에 박은 듯하였다. 아이의 머리에 얹힌 소학생 모자가 뒤로 젖혀지자 쓸쓸한 눈빛까지도 아버지를 빼닮은 듯하였다.
안석영
(安夕影)

1901년 4월 1일 ~ 1950년 2월 24일
연극배우, 무대장치 미술가, 서양화가, 미술평론가, 영화감독, 만화·시·소설·희곡·시나리오 작가

1901년 서울에서 출생. 본명은 안석주(安碩柱).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일본에 건너가 ‘동경 혼고(本鄕) 양화(洋畵)연구소’에서 미술 수업후 1921년 귀국했다.
노수현, 이상범 등과 함께 만화를 배웠으며, 나도향의 『동아일보』 연재소설 「환희」(1922~23)의 삽화를 그렸다.
1921년 이기세가 주도하는 예술협회의 공연에 출연하면서부터 연극배우로 활동.
1922년 홍사용, 이상화, 박영희, 나도향 등과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고, ‘백조’가 후원하는 극단 토월회에 가입하였다.
김복진, 김기진 형제와 함께 토월미술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김복진, 박영희, 김기진 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을 목표로 한 파스큘라(PASKYULA) 창립동인으로 참여(1923).
1925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만화 「허풍선이 모험기담」, 「바보의 하로일」, 「엉터리」 등을 연재했다.
1925년 8월 김복진, 박영희, 김기진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을 조직했다.
1928년 『조선일보』 학예부장이 되었으며 벽초 홍명희의 연재소설 『임꺽정』의 삽화를 그렸다.
1930년 서광제, 이효석, 안종화, 김유영 등과 ‘조선시나리오라이터협회’를 창립.
1937년 첫 영화 「심청전」을 감독하였고, 1940년 최남주의 조선영화주식회사에 전속 감독으로 입사했다.
친일 영화인 「지원병」(1941), 「흙에 산다」(1942)를 연출했다.
1947년 KBS의 3·1절기념 어린이 노래극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 주제가 ‘우리의 소원’을 작사했다.
해방 이후 주로 중앙일보사 고문 등 언론계, 문화계에서 활동하다가 지병으로 1950년 2월에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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