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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신휴머니즘론

임화

소위 新[신]휴머니즘論[론]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 것은 내외의 공통한 현상이다. 작년중 東京[동경] 문단을 시끄럽게 하던 諸[제] 휴머니즘론도 거개 르네상스와의 관련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우리 문단의 同論[동론] 輸入者[수입자]들도 이 테마를 번복하였다. 그러면 왜 현대 휴머니즘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가? 간단히 말하면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성의 존중이나, 인간 혹은 개성의 자유를 모토로 하는 사상이 현대에 고유한 창안이 아니라 전에 존재했던 것의 부흥·계승·개혁이라고 생각되는 때문이다. 즉 르네상스라고 불러지는 13∼15세기간의 휴머니즘 사상은 문화의 중심 성격으로 開花[개화]한 일이 있었다. 주지와 같이 그것은 근대문화의 찬란한 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역사상에서 진정한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소위 新[신]휴머니즘論[론]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 것은 내외의 공통한 현상이다.
작년중 東京[동경] 문단을 시끄럽게 하던 諸[제] 휴머니즘론도 거개 르네상스와의 관련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우리 문단의 同論[동론] 輸入者[수입자]들도 이 테마를 번복하였다.
그러면 왜 현대 휴머니즘이 르네상스를 문제 삼는가?
간단히 말하면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성의 존중이나, 인간 혹은 개성의 자유를 모토로 하는 사상이 현대에 고유한 창안이 아니라 전에 존재했던 것의 부흥·계승·개혁이라고 생각되는 때문이다.
즉 르네상스라고 불러지는 13∼15세기간의 휴머니즘 사상은 문화의 중심 성격으로 開花[개화]한 일이 있었다.
주지와 같이 그것은 근대문화의 찬란한 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역사상에서 진정한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위대한 문화적, 창조적 능력을 발휘해 본 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근대인에게는 잊어버릴 수 없는 청춘시절이었으며 상실된 애정처럼 항상 戀戀[연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었다.

임화(林和)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8월 6일
시인·평론가·문학운동가.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서울 출생.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에 중퇴.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1928년에 박영희(朴英熙)와 만났으며, 윤기정(尹基鼎)과 가까이 하면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
1929년에는 「우리 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順伊)」·「어머니」·「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발표.
시집 『현해탄(玄海灘)』·『조선신문학사』 간행, 출판사 ‘학예사’ 운영,
1946년 2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7년 11월에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노선의 민전의 기획차장으로 활동.
월북 후에는 6·25까지 조·소문화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일하였다.
1953년 8월에 남로당 중심 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였다.
시집으로는 『현해탄』(1938)·『찬가(讚歌)』(1947)·『회상시집(回想詩集)』(1947)·『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 ,
평론집으로는 『문학의 논리』(194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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