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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수필선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벗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장이다. 담장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을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벗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장이다. 담장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을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한다.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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