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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강경애 단편소설

“아침마다 냉수 한 컵씩을 자시고 산보를 하십시오.”하는 의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부터 해란강변에 나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있는 우물에서 냉수 한 컵씩 먹는 것이 일과로 되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타월, 비누갑, 컵 등만 가지고 나갔으나 부인네들이 물 길러 오는 것이 하도 부럽게 생각되어서 어느덧 나도 조그만 물동이를 사서 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번번이 우물가에는 부인으로 꼭 채여서 미처 자리 얻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아마도 이 우물의 물맛이 용정에서는 제일 가는 탓으로 부인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모양입니다. 내가 물동이를 이고, 가지가 조롱조롱 맺힌 가지밭을 지날 때마다 혹은 그 앞에 이슬이 뚝뚝 듣는 수수밭 옆을 지날 때마다 꼭 만나는 여인이 있으니, 언제나 우리 사이는 모른 체하고 가지런히 ..
“아침마다 냉수 한 컵씩을 자시고 산보를 하십시오.”하는 의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부터 해란강변에 나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있는 우물에서 냉수 한 컵씩 먹는 것이 일과로 되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타월, 비누갑, 컵 등만 가지고 나갔으나 부인네들이 물 길러 오는 것이 하도 부럽게 생각되어서 어느덧 나도 조그만 물동이를 사서 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번번이 우물가에는 부인으로 꼭 채여서 미처 자리 얻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아마도 이 우물의 물맛이 용정에서는 제일 가는 탓으로 부인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모양입니다.

내가 물동이를 이고, 가지가 조롱조롱 맺힌 가지밭을 지날 때마다 혹은 그 앞에 이슬이 뚝뚝 듣는 수수밭 옆을 지날 때마다 꼭 만나는 여인이 있으니, 언제나 우리 사이는 모른 체하고 가지런히 걸어서 우물까지 가곤 합니다.

모른 체하는 이가 하필 그뿐이며 어깨 위를 스치는 수숫잎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 어찌 그이뿐이리오만은 어쩐지 그를 만날 때마다“또 만났구나! 또 모른 체하누나!”하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나가기를 월여나 지난 어느 날 아침 나는 여전히 가지밭까지 왔습니다. 흑진주알 같았던 가지에는 어느덧 검붉은 가을 물이 들었으며 수숫잎 역시 바람결에 우수수 하고 가을 소리를 합니다. 그때 신발소리가 자박자박 나므로 나는 그가 아닌가? 하고 휘끈 돌아보았을 때 아니나다를까 그였습니다. 그는 웬일인지 얼굴이 푸석푸석 부은 듯했으며 바른 볼에는 퍼렇게 피진 자국이 뚜렷하였습니다.
강경애(姜敬愛)
1906.4.20 ~ 1943.4.26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 출생
장연(長淵)으로 이주하여 1925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였으나 1년후 중퇴
양주동과 사귀었으나 파탄후 귀향하여 야학 등 사회활동에 투신한다.
1931년에 결혼하고 간도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며 조선일보 간도지국장 지냈다.
1944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장연에서 작고.

1931. 조선일보에 발표한 「파금(破琴)」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어머니와 딸」같은해에 발표하고 단편소설 「부자」(1934)·「채전(菜田)」(1933)·「지하촌」(1936) 등을 발표했다.
주요작품으로 장편소설 「소금」(1934)·「인간문제」(1934), 단편으로「축구전(蹴球戰)」(1933)·「유무(有無)」(1934)·「모자(母子)」(1935)·「원고료이백원」(1935)·「해고(解雇)」(1935)·「산남(山男)」(1936)·「어둠」(193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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