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 큰아부지 만나거든 쌀 가져 온 인사를 하여라. 잠잠하고 있지 말고.”
저녁술을 놓고 나가는 아들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바위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잠잠히 나와 버리고 말았다.
사립문 밖을 나서는 길로 그는 홍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이나 무슨 기별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났던 것이다. 홍철의 집까지 온 그는 한참이나 주점주점하고 망설이다가 문안으로 들어서며 기침을 하였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홍철의 아내는,
“오십니까. 그런데 오늘도 무슨 기별이 없습니다그려.”
바위가 묻기 전에 앞질러 이런 걱정을 하며 어린애를 안고 나온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 모양이에요. 그러기에 소식이 없지요 그만 내가 가볼까 하여요.”
바위는 언제나 홍철의 아내와 마주서면 얼굴을 조금 외면하고 딴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손을 부자연하게 합수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그의 늘 하는 버릇이다.
“여기서 읍이 백 리라지요.”
“네.”
바위는 머리를 숙이며 겨우 대답하고 또 가만히 있다. 홍철의 아내는 바위의 이 모양이 호의로 해석이 되면서도 이런 때는 끝없이 안타까웠다.
강경애(姜敬愛)
1906.4.20 ~ 1943.4.26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 출생
장연(長淵)으로 이주하여 1925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였으나 1년후 중퇴
양주동과 사귀었으나 파탄후 귀향하여 야학 등 사회활동에 투신한다.
1931년에 결혼하고 간도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며 조선일보 간도지국장 지냈다.
1944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장연에서 작고.
1931. 조선일보에 발표한 「파금(破琴)」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어머니와 딸」같은해에 발표하고 단편소설 「부자」(1934)·「채전(菜田)」(1933)·「지하촌」(1936) 등을 발표했다.
주요작품으로 장편소설 「소금」(1934)·「인간문제」(1934), 단편으로「축구전(蹴球戰)」(1933)·「유무(有無)」(1934)·「모자(母子)」(1935)·「원고료이백원」(1935)·「해고(解雇)」(1935)·「산남(山男)」(1936)·「어둠」(193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