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祐鎭의 대표 희곡
-산돼지
-이영녀
-정오
<등장인물>
최원봉(29세) 차혁(28세) 최영순(20세) 최 주사댁(58세) 정숙(25세)
장소
서울 가까운 어떤 군 읍내
제1막
주사댁 집 앞마당을 중심으로 오른편으로 건넌방, 그 앞에 뒷마루. 왼편으로 큰 대청, 또 그 왼편으로 안방 영창문이 있고, 그 앞으로 부엌간이 내밀고 있다. 중류 계급의 견실 순박한 기풍의 세간살이, 장독대, 뒤주, 찬장, 심지어 걸레질 잘 해 놓은 마룻바닥, 잘 쓸어 놓은 마루 밑까지 나타나 있다. 여름날 석양.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움이 서늘하게 열어 젖힌 대청 안에서 도사리고 있다.
막이 열리면 대청 중앙에 원봉이와 혁이가 바둑판을 마주 놓고 앉아 있다. 세 번째 승패의 끝판이다.
차혁 : (기가 난 듯이 다리를 세우며) 흥, 끝판에 탁 대들어 본다. 오냐, 대들어 봐 라.(바둑을 놓는다.)
최원봉 : (냉연하게) 네가 말 안 해도 벌써 이렇게 대들지 않았니?(놓는다.) 이리로 막아 버리면 네 살길이 어디냐?
차혁 : (놓으며) 또 이리로 막아 버리면 네 길은 어디고.
최원봉 : (웃으며) 이 넒은 세상에 길이 없을까 봐. (놓는다.)
차혁 : 아, 이놈 보게. (생각한 뒤에 놓는다.)
최원봉 : 넒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넒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놓는다.) 넓은 세 상에……
金祐鎭
(1897.09.19~1926.08.04 )
극작가·연극이론가 ·연극인
극작가.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수산(水山).
필명으로 소춘(小春), 정로생(正路生)과 함께 S. K라는 영어 이니셜도 사용하였다.
목포공립심상고등소학교, 일본 구마모토 현립(態本縣立) 농업학교를 졸업. 1920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0년 최초의 근대극 단체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를 조직. 1921년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만들어 연출가로서 활약했다.
1924년 이후 <정오> <산돼지> <이영녀> <두덕이 시인의 환멸> <난파> 등 5편의 뛰어난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에 시·희곡창작·평론에 몰두해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썼다.
한국 최초로 유진 오닐, 피란델로, 차페크 등 극작가를 소개했으며 최초로 표현주의 희곡도 썼다.
1926년 8월 가수 윤심덕(尹心悳)과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했다.
김우진은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
특히 희곡은 주로 가정과 사회의 인습에 의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여성 혹은 예술가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표현주의극의 요소를 도입하여 새로운 극 형식의 창출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