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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조

김소월수필집

멧해만에 先生[선생]님의 手跡[수적]을뵈오니 感慨無量[감개무량]하옵니다 그우에 보내주신冊[책] 忘憂草[망우초]는 再三披閱[재삼피열]하올때에 바로 함께모시든 그옛날이 眼前[안전]에 彷佛[방불]하옴을 깨닷지못하엿습니다題忘憂草[제망우초]는근심을 이저버린 忘憂草[망우초]입니까이저버리는 忘憂草[망우초]입니까 닛자하는 忘憂草[망우초]입니까 저의생각가터서는 이마음둘데업서 닛자하니 이리불너 忘憂草[망우초]라하엿스면 조켓다하옵니다 저가 龜城[귀성]와서 明年[명년]이면 十年[십년]이옵니다. 十年[십년]도 이럭저럭 짤븐歲月[세월]이 아닌모양이옵니다. 山村[산촌]와서 十年[십년]잇는동안에 山川[산천]은 別[별]로 變[변]함이 업서 보여도 人事[인사]는 아주글러진듯 하옵니다 世紀[세기]는저를버리고 혼자 압서서다라간것갓사옵니다 讀..
멧해만에 先生[선생]님의 手跡[수적]을뵈오니 感慨無量[감개무량]하옵니다 그우에 보내주신冊[책] 忘憂草[망우초]는 再三披閱[재삼피열]하올때에 바로 함께모시든 그옛날이 眼前[안전]에 彷佛[방불]하옴을 깨닷지못하엿습니다題忘憂草[제망우초]는근심을 이저버린 忘憂草[망우초]입니까이저버리는 忘憂草[망우초]입니까 닛자하는 忘憂草[망우초]입니까 저의생각가터서는 이마음둘데업서 닛자하니 이리불너 忘憂草[망우초]라하엿스면 조켓다하옵니다
저가 龜城[귀성]와서 明年[명년]이면 十年[십년]이옵니다. 十年[십년]도 이럭저럭 짤븐歲月[세월]이 아닌모양이옵니다. 山村[산촌]와서 十年[십년]잇는동안에 山川[산천]은 別[별]로 變[변]함이 업서 보여도 人事[인사]는 아주글러진듯 하옵니다 世紀[세기]는저를버리고 혼자 압서서다라간것갓사옵니다 讀書[독서]도아니하고 習作[습작]도 아니하고 事業[사업]도 아니하고 그저 다시잡기 힘드는돈만 좀노하보낸모양이옵니다
김소월
1902.8.6 ~ 1934.12.24
1902년 8월 6일(음력) 평안북도 구성(龜城)에서 출생.본명 정식(廷湜).
오산학교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도쿄상대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영향을 받아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에 발표하였다.
이후 《먼 후일(後日)》 《죽으면》 《허트러진 모래 동으로》 등을 《학생계(學生界)》에 발표하고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봄밤》 등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다.
1922년에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산유화(山有花)》를 비롯하여
《밭고랑》 《생(生)과 사(死)》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을 남긴 소월은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음독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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