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레이유 바랑의 얼굴을 나는 대여섯 장 째나 그리고 있었다. 결국 한 장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새로운 목탄지를 내서는 또다시 그의 얼굴의 뎃상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봉절될 영화 「망향」의 석간 신문지 속에 넣을 조그만 광고지의 도안이었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바랑과 갸방의 얼굴을 그리고 그 속에 출연자의 스태프와 자극적인 광고문을 넣자는 고안이었으나 광고문은커녕 나는 바랑의 얼굴에서 그만 막혀 버린 것이 좀체 운필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 마음이 초조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여배우 얼굴 하나 가지구 벌써 몇 시간을 잡아먹나. 얼른 끝을 내야 인쇄소에 넘겨 저녁때까지에 박아내지 않겠나.”
맞은편에 책상을 마주대고 앉은 동료는 나의 궁싯거리는 양이 보기 민망해서 기어코 자리를 일어선다.
“웬일인지 모르겠네. 그리다 그리다 이렇게 막힐 법은 없어. 고 눈과 코가 종시 말을 들어야 말이지.”
동료는 등뒤로 돌아오더니 어깨너머로 내 그림을 바라보며,
“자넨 벌써 바랑과 연앤가.”
“연애라니.”
“암, 연애구 말구. 그렇게 망설이는 자네 마음이 심상치 않어.”
쓸데없는 말을 걸어온 까닭에 결국 망쳐 버리고야 말았다.
“연애!”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