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0 0 0 20 0 6년전 0

쑥국새

채만식단편소설

왼편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보이느니 무덤들만 다닥다닥 박혀 있는 잔디 벌판이 빗밋이 산발을 타고 올라간 공동묘지. 바른편은 누르붉은 사석이 흉하게 드러난 못생긴 왜송이 듬성듬성 눌어붙은 산비탈. 이 사이를 좁다란 산협 소로가 꼬불꼬불 깔끄막져서 높다랗게 고개를 넘어갔다 . 소복히 자란 길 옆의 풀숲으로 입하(立夏) 지난 햇빛이 맑게 드리웠다. 풀포기 군데군데 간드러진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섰다. 제비꽃은 자주빛, 눈곱만씩한 괭이밥꽃은 노랗다. 하얀 무릇꽃도 한참이다. 대황도 꽃만은 곱다. 할미꽃은 다 늙게야 허리를 펴고 흰 머리털을 날린다. 구름이 지나가느라고 그늘이 한 떼 덮였다가 도로 밝아진다. 솔푸덕에서 놀란 꿩이 잘겁하게 울고 날아간다. 미럭쇠는 이 경사 급..
왼편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보이느니 무덤들만 다닥다닥 박혀 있는 잔디 벌판이 빗밋이 산발을 타고 올라간 공동묘지.

바른편은 누르붉은 사석이 흉하게 드러난 못생긴 왜송이 듬성듬성 눌어붙은 산비탈.

이 사이를 좁다란 산협 소로가 꼬불꼬불 깔끄막져서 높다랗게 고개를 넘어갔다 . 소복히 자란 길 옆의 풀숲으로 입하(立夏) 지난 햇빛이 맑게 드리웠다.

풀포기 군데군데 간드러진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섰다. 제비꽃은 자주빛, 눈곱만씩한 괭이밥꽃은 노랗다. 하얀 무릇꽃도 한참이다.

대황도 꽃만은 곱다.

할미꽃은 다 늙게야 허리를 펴고 흰 머리털을 날린다.

구름이 지나가느라고 그늘이 한 떼 덮였다가 도로 밝아진다.

솔푸덕에서 놀란 꿩이 잘겁하게 울고 날아간다.

미럭쇠는 이 경사 급한 깔끄막길을 무거운 나뭇짐에 눌려 끙끙 어렵사리 올라가고 있다.

꾀는 없고 욕심만 많아, 마침 또 지난 장에 새로 베려온 곡괭이가 알심있이 손에 맞겠다, 한데 산림간수한테 오기는 있어, 들키면 경을 치기는 매일반이라서 들이 닥치는 대로 철쭉 등걸이야. 진달래 등걸이야 소나무 등걸이야 더러는 멀쩡한 옹근 솔까지 마구 작살을 낸 것이, 해놓고 보니 필경 짐에 넘치는 것을 제 기운만 믿고 짊어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산에 내려오면서는 몇번이고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고 시방 이 길을 올라가는 데도 여간만 된 게 아니다.

게다가 사월의 긴긴 해에 한낮이 훨씬 겨워 거진 새때나 되었으니 안 먹은 점심이 시장하기까지 하다.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소설가,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 출생.
1918년 중앙고보,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수학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 잠시 근무.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가 초기작이다.
1933년 『조선일보』에 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연재.
1934년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이 있다.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net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