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쭙잖은 일로 삼남 지방 T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츨을 보낸 일이 있었다.
사월 그믐께 서울에서는 창경원 밤 꽃구경이 한참일 무렵이었다. 앞문 목 책과 뒤 쇠창살 사이로 햇발은 금강석과 같이 부시다. 조각밖에 아니 보이는 하늘가로 흰 구름의 끄트머리가 어른어른 떠돈다.
지금까지 문 앞에서 서성서성하고 있던 우리 방에서는 제일 존장인 오십 남짓한 구레나룻이 한숨인지 감탄인지 분간 못할 소리로 읊조렸다.
“에에헷! 일기는 참 좋군! 저 홰나뭇가지를 보시오. 거기는 바람이 있구려. 새파란 잎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곧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 같구려.”
나는 그 절묘한 형용사에 놀래었다. 그는 주막집 주인으로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꾸려가다가 수상한 청년 한 명을 재운 죄로 벌써 열이틀째 고생을 하고 있는 중늙은이다. 그에게 이런 시흥이 있을 줄이야! 나의 눈에도 그 홰나무가 뜨인 지는 오래였다. 경찰서 마당 소방대 망루가 있는 바로 옆에 그 홰나무는 넓은 마당을 덮은 듯이 푸른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때마츰 불어오는 동풍을 안고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휘영휘영 흔들린다. 갇힌 이에게는 그 자연스러운―자연스럽지 못한 경우에 쪼들리는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러운 데 주렸으랴―푸른 빛이 끝없는 감흥을 일으켰음이리라. 그 바람을 따라 아모 거리낌 없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는 모양이 어데까지 자유스럽고 어데까지 즐겁게 보였음이리라. 하늘에 날아 오르는 것 같다는 한 마디 말에 그 홰나무의 형용과 아울러 그의 처지와 감정과 심회를 여실하게 나타낸 것이다.
‘경우가 시인을 낳는구나.’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구레나룻의 탄식과 내 한숨은 단박에 전염이 되었다. 한 칸 소침한 우리 방에 빡빡하게 들어찬 열두 명의 입에서는 마치 군호나 부른 듯이 일제히 한숨이 터졌다. 한숨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곳에는 그것같이 전염 잘되는 것은 없었다. 한 사람이 쉬면 왼 방이 모조리 따르고 한 방에서 일어나면 삽시간에 각 방으로 퍼져,
“후우!”
“아이구우!”
하는 소리가 마치 회호리바람과 같이 지나간다. 이 아모런 의미 없는 숨길에 얼마나 많은 뜻이 품겼으랴, 얼마나 많은 하소연이 섞였으랴. 그것은 입술에 발린 천마디만마디 말보담도 몇 백 곱절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미어지는 제 가슴 한 모퉁이를 역력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말라 가는 제 피 방울방울을 무더기로 뿜어내는 것이다!
현진건(玄鎭健)
1900. 8. 9. ~ 1943. 4. 25.
호는 빙허(憑虛).
1900년 8월 9일 대구 출생.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 후, 1917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 졸업.
1918년 상해 호강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동명』, 『시대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1943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여 문단활동을 시작.
1921년 자전적 소설 「빈처」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타」(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과 장편 「적도」(1933~1934), 「무영탑」(1938)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