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야담소설
백월산(白月山)은 신라 구부군(仇夫郡)의 북쪽에 있는 커다란 산이다. 아름다운 봉우리와 기이한 바위와 험한 골짜기가 많은 뫼다. 구부군은 지금의 의안(義安)이다. 이 백월산에 대하여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당나라 천자가 대궐 뜰 앞에 한 개의 못을 팠다. 그리고 그 못가를 산책하는 것을 한 소일로 하고 있었다. 어떤 보름달 밝은 밤, 이 못가를 거닐고 있던 천자는 괴상한 광경을 발견하였다. 못에는 웬 커다란 뫼가 하나 비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뫼, 험한 바위 사이로는 한 마리의 사자가 이리저리 머리를 두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기이한 일에 의아하게 생각하고 천자는 다시 머리를 들어서 사면을 살펴 보았다. 혹은 이 근처의 산이 못에 비치었는가 하여─. 그러나 천자도 이미 잘 알다시피 이 근처에는 사자가 출몰하는 험산이 없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그림자는 그날 밤뿐으로 사라져 없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보름달이 이르렀다.
그림자는 보름달 다시 못에 비치었다. 그 다음 보름날도 다시 비치었다. 기괴한 바위와 거기 현몰(顯沒)하는 사자의 그림자는 그 뒤 보름날 달 밝은 밤마다 늘 대궐 뜰 앞 못물에 비치었다.
천자는 이것을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여 화공(畵工)을 불러서 그 산의 모양을 그리게 하였다. 산의 모양을 그린 뒤에는 그 그림을 사람에게 내어주어서 천하를 편답하여서 그림의 산과 같이 생긴 산을 찾아 보라고 명하였다.
명을 받은 신하는 그림의 산과 같이 생긴 산을 얻고자 길을 떠났다. 이리하여 천하를 편답하던 신하는 해동(海東) 땅에 이르러서 한 뫼를 발견하였다. 보매, 그림과 신통히도 같이 생긴 산이었다. 뿐더러 그 산에는 사자도 있었다. 그 산의 서남쪽에는 세 봉우리를 가진 화산(火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수학.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
1919년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0년 부터「광염소나타」, 「광화사」,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