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의사의 얼굴은 몇 번이나 치어다보았다. '의사도 인간이다, 나하고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이렇게 속으로 아무리 부르짖어 보았으나 그는 의사를 한낱 위대한 마법사나 예언자 쳐다보듯이 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의사는 붙잡았던 그의 팔목을 놓았다 (가만히). 그는 그것이 한없이 섭섭하였다. 부족하였다. '왜 벌써 놓을까, 왜 고만 놓을까? 그만 보아 가지고도 이 묵은[老] 중병자를 뚫어 들여다볼 수가 있을까.' 꾸지람 듣는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쳐다보듯이 그는 가련 (참으로) 한 눈으로 의사의 얼굴을 언제까지라도 치어다보아 그만 두려고는 하지 않았다. 의사는 얼굴을 십장생화(十長生畵) 붙은 방문 쪽으로 돌이킨 채 눈은 천장에 꽂아 놓고 무엇인지 길이 깊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길게 한숨 하였다. 꽉 다물어져 있는 의사의 입은 그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안방에서 들리는 담소(談笑)의 소리에서 의사의 웃음소리가 누구의 것보다도 가장 큰 것을 그는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눈물날 만큼 분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병이 그다지 중(重)치는 아니 하기에 저렇지. '하는 생각도 들어, 한편으로는 자그마한 안심을 가져 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에도 그가 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팔목을 잡았을 때의 의사의 얼굴에서부터 방산(放散)해 오는 술의 취기 그것이었다. '술을 마시고도 정확한 진찰을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여가며 그래도 그는 그의 가슴을 자제하였다. 그리고 의사를 믿었다. (그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그는 그렇게도 의사를 태산같이 믿었다.) 그러나 안방에서 나오는 의사의 큰 웃음소리를 그가 누워서 귀에 들을 수 있었을 때에 '내 병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지! 술을 마시고 와서 장난으로 내 팔목을 잡았지, 그 수심스러운 무엇인가를 숙고 하는 것 같은 얼굴의 표정도 다 - 일종의 도화극(道化劇)이었지! 아 - 아 - 중요하지도 않은 인간 -.' 이런 제어할 수 없는 상념이 열에 고조된 그의 머리에 좁은 구멍으로 뽑아 내는 철사처럼 뒤이어 일어났다. 혼자 애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 - 고만하세요, 전작이 있어서 이렇게 많이는 못 합니다." 의사가 권하는 술잔을 사양하는 이러한 소리와 함께 술잔이 무엇엔가 부딪히는 쨍그렁하는 금속성 음향까지도 구별해 내며 의식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머리는 아직도 그다지 냉정을 상실치는 않았다.
병상 이후(1939년) 中
이상(李箱)
1910.8.20 ~ 1937.4.17
본명 김해경
시인·소설가.
서울 출생. 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 졸업.
총독부의 건축기사로 근무.
1930년 소설 〈12월 12일(十二月 十二日)〉을 《조선(朝鮮)》에 발표.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다.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발표했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경영하며 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김기림(金起林)·윤태영(尹泰榮)·조용만(趙容萬) 등과 문단 교우.
1936년 변동림(卞東琳)과 결혼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1936년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