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정조(貞操)
이런 경우 ― 즉 ‘남편만 없었던들.’, ‘남편이 용서만 한다면.’ 하면서 지켜진 아내의 정조란 이미 간음이다. 정조는 금제(禁制)가 아니요, 양심(良心)이다. 이 경우의 양심이란 도덕성(道德性)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절대(絶對)의 애정’ 그것이다. 만일 내게 아내가 있고 그 아내가 실로 요만 정도의 간음을 범한 때 내가 무슨 어려운 방법으로 곧 그것을 알 때, 나는 ‘간음한 아내’라는 뚜렷한 죄명(罪名) 아래 아내를 내쫓으리라. 내가 이 세기(世紀)에 용납되지 않는 최후의 한꺼풀 막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간음한 아내는 내쫓으라.’는 철칙(鐵則)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내 곰팡내 나는 도덕성이다.
비밀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할 뿐만 아니라, 더 불쌍하다. 정치세계(政治世界)의 비밀 ― 내가 남에게 간음한 비밀, 남을 내게 간음시킨 비밀, 즉 불의(不義)의 양면(兩面) ― 이것을 나는 만금(萬金)과 오히려 바꾸리라. 주머니에 푼전이 없을망정 나는 천하를 놀려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큰 부자(富者)일 수 있다.
이상(李箱)
1910.8.20 ~ 1937.4.17
본명 김해경
시인·소설가.
서울 출생. 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 졸업.
총독부의 건축기사로 근무.
1930년 소설 〈12월 12일(十二月 十二日)〉을 《조선(朝鮮)》에 발표.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다.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발표했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경영하며 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김기림(金起林)·윤태영(尹泰榮)·조용만(趙容萬) 등과 문단 교우.
1936년 변동림(卞東琳)과 결혼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1936년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