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꿈―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자는 것이 아니다. 누운 것도 아니다.
앉아서 나는 듣는다. (12월 23일)
"언더 더 워치―시계 아래서 말이에요, 파이브 타운스―다섯 개의 동리란 말이지요. 이 청년은 요 세상에서 담배를 제일 좋아합니다 ―― 기다랗게 꾸부러진 파이프에다가 향기가 아주 높은 담배를 피워 빽― 빽― 연기를 풍기고 앉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낙이었답니다."
(내야말로 동경 와서 쓸데없이 담배만 늘었지. 울화가 푹― 치밀을 때 저― 폐까지 쭉― 연기나 들이켜지 않고 이 발광할 것 같은 심정을 억제하는 도리가 없다.)
"연애를 했어요! 고상한 취미――우아한 성격――이런 것이 좋았다는 여자의 유서예요――죽기는 왜 죽어 ―― 선생님――저 같으면 죽지 않겠습니다. 죽도록 사랑할 수 있나요――있다지요. 그렇지만 저는 모르겠어요."
(나는 일찍이 어리석었더니라. 모르고 연(姸)이와 죽기를 약속했더니라. 죽도록 사랑했건만 면회가 끝난 뒤 대략 이십 분이나 삼십 분만 지나면 연이는 내가 '설마' 하고만 여기던 S의 품안에 있었다.)
이상(李箱)
1910.8.20 ~ 1937.4.17
본명 김해경
시인·소설가.
서울 출생. 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 졸업.
총독부의 건축기사로 근무.
1930년 소설 〈12월 12일(十二月 十二日)〉을 《조선(朝鮮)》에 발표.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다.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발표했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경영하며 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김기림(金起林)·윤태영(尹泰榮)·조용만(趙容萬) 등과 문단 교우.
1936년 변동림(卞東琳)과 결혼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1936년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