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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장편소설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소설. 소설이 창작된 시기는 이광수가 수차에 걸친 와병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때이다. 『동아일보』에서는 1931년부터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했고, 1931년 1월에 속간된 동우회 기관지 『동광』에서도 농촌문제 특집을 다루고 있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공황이 몰아닥친 1931년 경 한국의 농촌은 유례없이 참담한 상황이었다. 이광수의 「흙」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씌어졌다. 소설은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허숭은 고아 출신으로 윤참판댁에서 기식하며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소설의 첫째 장은 그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윤참판의 신임을 얻어 그의 ..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소설.

소설이 창작된 시기는 이광수가 수차에 걸친 와병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때이다. 『동아일보』에서는 1931년부터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했고, 1931년 1월에 속간된 동우회 기관지 『동광』에서도 농촌문제 특집을 다루고 있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공황이 몰아닥친 1931년 경 한국의 농촌은 유례없이 참담한 상황이었다. 이광수의 「흙」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씌어졌다. 소설은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허숭은 고아 출신으로 윤참판댁에서 기식하며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소설의 첫째 장은 그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윤참판의 신임을 얻어 그의 딸 정선과 혼인을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두번째 장은 허숭이 자신의 고향인 살여울에 내려가 계몽사업을 벌이는 과정을, 세번째 장은 정선이 타락한 생활에 빠졌다가 자살을 기도하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마지막 장은 살여울의 지주인 정근에 의해 초래되는 마을 사람들간의 갈등과 해소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서두에서는 허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선과 유순의 삼각관계가 갈등의 핵심이며, 중반부에서는 허숭과 정선의 갈등이,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살여울의 농촌운동을 중심으로 야기되는 허숭과 정근의 갈등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한 줄거리 속에서 중심적인 인물인 허숭은 모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인격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또 그 뒤에는 한민교 선생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버티고 있다. 이 둘의 모습은 이광수와 그 배후에 있던 안창호의 모습과 혹사하거니와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농촌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민족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그것은 동우회와 흥사단의 이념이자 브-나로드 운동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에 의해 표상되는 농촌 계몽의 이념은 철저히 지식인의 입장에서 본 시혜적인 것이어서,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흙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이광수(李光洙)
1892년 2월 1일 ~ 1950년 10월 25일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였다.
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1906년 3월 다이세중학[大城中學]에 입학.
190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백금학보(白金學報)』 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1910년 『소년』에 신체시 「우리 영웅」을 발표하였고,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에 평론 「문학의 가치」와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였다.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 생활,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다
1915년 9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하였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 등의 단편 소설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1917년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으나 1918년 폐병이 재발하였다.
1921년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에「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1924년 「재생」, 1927년 「마의태자」, 1928년 「단종애사」, 1930년 「혁명가의 아내」, 1931년 「이순신」, 1932년 「흙」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安昌浩 )와 함께 투옥, 1938년 11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1947년 5월 『도산 안창호』, 6월 『꿈』을 출간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8월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7월 납북되었다가 10월 25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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