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중편소설
꿈
끝없는 동해 바다. 맑고 푸른 동해 바다. 낙산사(落山寺) 앞바다.
늦은봄의 고요한 새벽 어두움이 문득 깨어지고 오늘은 구름도 없어 붉은 해가 푸른 물에서 쑥 솟아 오르자, 끝없는 동해 바다는 황금빛으로 변한다.
늠실늠실하는 끝없는 황금 바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불그스레하게 물이 든다.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 틈의 철쭉꽃 포기들과 관세음 보살을 모신 낙산사 법당 기와도 황금빛으로 변한다.
『나무 관세음 보살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 보살』
하는 염불 소리, 목탁소리도 해가 돋자 끊어진다. 아침 예불이 끝난 것이다.
조신(調信)은 평목(平木)과 함께 싸리비를 들고 문밖으로 나와 문전 길을 쓸기를 시작한다. 길의 흙은 밤이슬에 촉촉이 젖었다.
싸악싸악, 쓰윽쓰윽 하는 비질 소리가 들린다.
조신과 평목이 앞 동구까지 쓸어 나갈 때에 노장 용선화상(龍船和尙)이 구부러진 길다란 지팡이를 끌고 대문으로 나온다.
이광수(李光洙)
1892년 2월 1일 ~ 1950년 10월 25일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였다.
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1906년 3월 다이세중학[大城中學]에 입학.
190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백금학보(白金學報)』 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1910년 『소년』에 신체시 「우리 영웅」을 발표하였고,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에 평론 「문학의 가치」와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였다.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 생활,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다
1915년 9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하였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 등의 단편 소설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1917년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으나 1918년 폐병이 재발하였다.
1921년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에「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1924년 「재생」, 1927년 「마의태자」, 1928년 「단종애사」, 1930년 「혁명가의 아내」, 1931년 「이순신」, 1932년 「흙」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安昌浩 )와 함께 투옥, 1938년 11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1947년 5월 『도산 안창호』, 6월 『꿈』을 출간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8월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7월 납북되었다가 10월 25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