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안동(安東)이다. 태백(太白)의 영산(靈山)이 고개를 흔들고 꼬리를 쳐 굼
실 굼실 기어 내리다가 머리를 쳐들은 영남산(嶺南山)이 푸른 하늘 바깥에
떨어진 듯하고, 동으로는 일월산(日月山)이 이리 기고 저리 뒤쳐 무협산(巫
峽山)에 공중을 바라보는 곳에 허공중천이 끊긴 듯한데, 남에는 동대(東臺)
의 줄기 갈라산(葛蘿山)이 펴다 남은 병풍을 드리운 듯하다.
유유히 흐르는 물이 동에서 남으로 남에서 동으로 구부렸다 펼쳤다 영남과
무협을 반 가름하여 흐르니 낙동강(洛東江) 웃물이요, 주왕산(周王山) 검은
바위를 귀찮다는 듯이 뒤흔들며 갈라 앞을 스쳐 낙동강과 합수(合水)치니
남강(南江)이다.
옛말을 할 듯한 입 없는 영호루(暎湖樓)는 기름을 흘리는 듯한 정적 고요
한 공기를 꿰뚫어 구름 바깥에 솟아 있어 낙강(洛江)이 돌고 남강이 뻗치는
곳에 푸른 비단 같은 물줄기를 허리에 감았으니, 늙은 창녀(娼女)의 기름
때 묻은 창백한 얼굴같이 옛날의 그윽한 핑크 색 정사(情史)를 눈물 흐르는
추회(追懷)의 웃음으로 듣는 듯할 뿐이다.
나도향
(羅稻香)
1902. 3. 30. ~ 1926. 8. 26.
서울 출생. 본명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은 호다.
1917년 공옥학교 졸업,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해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1. 배재학보에 「출향」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 시작
『신민공론』에 단편 「추억」을 발표했다.
1922년에는 박종화 ‧ 홍사용 ‧ 이상화, 현진건(玄鎭健) 등과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17원 50전」, 「은화」, 「춘성(春星)」「여이발사」,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