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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기

이효석 소설선3

이효석 소설선3 약령기(弱齡記) 가로의요술사 기우(奇遇) 독백 만보(萬甫) 사냥 황야 책 속으로 “자 똑똑히 들어보세요, 똑똑히.” 다 낡아서 구리쇠빛으로 변한 양복바지를 푸른빛 나는 오버로 감추고 머리에는 합 같은 검은 토이기 모자를 쓴 호리호리한 사나이는 부르짖었다. 십자가 한편에는 어느덧 군중의 파도를 일으켜 그를 복판에 두고 쭉 돌려서 사람의 담을 쌌다. 그의 윗입술은 쉴새없이 경련적으로 실룩실룩 하면서 마치 참새 무리 속에서 세례나 받은 듯이 놀랄 만큼 힘 좋은 구변으로 지껄인다. 적에게 포위되어 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짐승같이 좁은 권내(圈內)를 빙빙 돌아다니면서, “똑똑히 보세요, 똑똑히 ─” 그러자 시선을 앞으로 바싹 다가선 어린아이에게, “얘 이..
이효석 소설선3

약령기(弱齡記)
가로의요술사
기우(奇遇)
독백
만보(萬甫)
사냥
황야



책 속으로

“자 똑똑히 들어보세요, 똑똑히.”
다 낡아서 구리쇠빛으로 변한 양복바지를 푸른빛 나는 오버로 감추고 머리에는 합 같은 검은 토이기 모자를 쓴 호리호리한 사나이는 부르짖었다.
십자가 한편에는 어느덧 군중의 파도를 일으켜 그를 복판에 두고 쭉 돌려서 사람의 담을 쌌다.
그의 윗입술은 쉴새없이 경련적으로 실룩실룩 하면서 마치 참새 무리 속에서 세례나 받은 듯이 놀랄 만큼 힘 좋은 구변으로 지껄인다. 적에게 포위되어 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짐승같이 좁은 권내(圈內)를 빙빙 돌아다니면서,
“똑똑히 보세요, 똑똑히 ─”
그러자 시선을 앞으로 바싹 다가선 어린아이에게,
“얘 이 녀석은 좀 나서라. 어린 녀석이 바싹바싹 식전부터 어린애가 날뛰면 아무것도 안되는 법이야. 그래도 그 녀석이.”
그 유창한 어조는 군중들에게 웃음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더욱 더욱 만족에 빛나고 변설은 고무풍선같이 가볍게 그의 입술을 흘러 나온다.
“자 똑똑히 보세요.”
하면서 단련된 손목을 능청스럽게 움직이자 오른손에 쥐었던 은전이 하나씩 둘씩 가벼운 음향을 남기면서 왼손 속으로 옮겨져 간다. 그는 “어떱시요”
하는 듯한 자기의 기술에 대한 자신과 과긍에 넘치는 눈초리로 군중을 둘러 보았다. 주위 사람들의 경탄하는 듯한 침묵이 극도로 긴장한 공기는 그의 용기에다 더욱 더욱 불을 질렀다. 그는 자기의식을 아주 잃어버린 것과 같이 자기의 감격적 몸짓과 기술에 취한 듯하였다.

-가로의 요술사-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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