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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강화

朝鮮歷史講話 최남선(崔南善)이 1930년 1월 12일부터 3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한국사 개설서. 조선의 민족·사회·문화에 대한 인과적·체계적 인식을 위한 조선인의 역사를 서술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과거 저자는 한민족의 상고사(上古史)와 단군(檀君)에 관한 내용이 이른바 언어학적 연구방법론에 의지하여 연구·서술됨으로 인해 내용과 문장이 난삽해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고 일반대중에게도 쉽게 다가가기 위한 일환으로 이 책을 저술했던 것이다. 책의 내용을 상고·중고·근세·최근 등으로 시대구분하였다. 상고는 조선의 시작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중고는 고려시대, 근세는 조선의 창업에서 동학(東學)까지, 최근은 대원군의 집정에서부터 융희..
朝鮮歷史講話

최남선(崔南善)이 1930년 1월 12일부터 3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한국사 개설서.

조선의 민족·사회·문화에 대한 인과적·체계적 인식을 위한 조선인의 역사를 서술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과거 저자는 한민족의 상고사(上古史)와 단군(檀君)에 관한 내용이 이른바 언어학적 연구방법론에 의지하여 연구·서술됨으로 인해 내용과 문장이 난삽해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고 일반대중에게도 쉽게 다가가기 위한 일환으로 이 책을 저술했던 것이다.

책의 내용을 상고·중고·근세·최근 등으로 시대구분하였다. 상고는 조선의 시작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중고는 고려시대, 근세는 조선의 창업에서 동학(東學)까지, 최근은 대원군의 집정에서부터 융희시대와 간도(間島)문제까지 서술하였다.

구성은 총 4편에 50장으로 되어있으며, 각 장에는 3개 절(항목)을 설정하여 총 150개의 항목에 따라 기술하였는데, 우선 그 짜임새가 주목된다.

저자가 서문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나타내었듯이 편·장·절의 구분이 근대적이며, 서술체재와 용어의 구사가 대단히 세련되어 있다. 특히, 장·절의 시대구분이나 제목들은 최근의 그것과 상통한다고 하겠다.

서술 중 특정한 사물에 대해 해설이 필요할 경우에는, 본문이 끝나는 곳에 주(註)형식의 해설을 붙여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저자가 이전에 사용하던 난해한 단어·문장들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조선 말기 현채(玄采)의 『동국사략(東國史略)』과 그 이후 이를 모방하여 편집하였던 여러 국사책들과 비교한다면, 체재·서술방식·내용 등에 있어서 훨씬 풍부하다는데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식민사학과의 타협과 민족사학 측면에서는 일보 후퇴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1973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간행된 『육당최남선전집(六堂崔南善全集)』 제1권에 전재되었다.



최남선
(崔南善)

1890년(고종 27)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
문인·언론인·사학자·친일반민족행위자.

1890년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한샘·남악주인(南嶽主人)·곡교인(曲橋人)·육당학인(六堂學人)·축한생(逐閑生)·대몽(大夢)·백운향도(白雲香徒)이다.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晉州) 강씨(姜氏)의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02년 경성학당에서 수학, 1904년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후 중퇴하였다.
1906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하고『대한유학생회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신문관(新文館)을 설립. 1908년 11월 잡지 『소년(少年)』을 출판하였다.
1910년 3월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근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하였다.

1912년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기』, 1914년 『청춘』 등의 잡지를 발행하였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1921년 10월 출옥하였고, 1922년 주간지 『동명』을 발행하였고 1924년에는 『시대일보』를 창간하였다
1926년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과 『백팔번뇌(百八煩惱)』,『심춘순례(尋春巡禮)』, 1927년 『백두산근참기(白頭山勤參記)』, 1928년 『금강예찬(金剛禮讚)』을 발표하였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동원론(文化同源論)’을 주장, 4월 조선계회(朝鮮禊會)의 고문을 맡았고, 1936년 「조선의 고유신앙[朝鮮の固有信仰]」을 발표하였다.

1936년 6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1937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조선 문화의 당면과제[朝鮮文化の當面課題]」를 게재하였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휴전 후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기고활동 지속하였다.
1957년 10월 10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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