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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실로

이상화 시집

이상화의 시선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 「이중(二重)의 사망」, 「몽환병(夢幻病)」, 「비음(緋音)」, 「이별(離別)을 하느니」, 「가상」, 「구루마꾼」, 「엿장사」, 「거러지」, 「조소(嘲笑)」, 「도-쿄에서」, 「파-란비」, 「선구자(先驅者)의 노래」, 「조선병(朝鮮病)」, 「비갠 아침」, 「저므는 놀안에서」, 「역천(逆天)」,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
이상화의 시선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 「이중(二重)의 사망」, 「몽환병(夢幻病)」, 「비음(緋音)」, 「이별(離別)을 하느니」, 「가상」, 「구루마꾼」, 「엿장사」, 「거러지」, 「조소(嘲笑)」, 「도-쿄에서」, 「파-란비」, 「선구자(先驅者)의 노래」, 「조선병(朝鮮病)」, 「비갠 아침」, 「저므는 놀안에서」, 「역천(逆天)」,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상화
1901년 ~ 1943년

호 무량(無量), 상화(尙火), 상화(想華)
경상북도 대구. 아버지는 이시우, 어머니는 김신자이다.
18세에 경성중앙학교를 졸업하고 금강산 일대를 방랑하였다.
1917년대구에서 현진건·백기만·이상백과 『거화(炬火)』로 시작 활동(詩作活動)을 시작하였다.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를 만나 홍사용·나도향·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白潮)’에 작품 발표.
1925년 8월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창립회원으로 참여.
1927년에는 의열단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하였다. 1934년에는 조선일보 경상북도총국을 경영하였다가 1년 만에 실패하였다.
1937년 대구 교남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했으며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불란서시정석」 등을 펴냈으나 43세에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백조’ 창간호에 발표한 「말세의 희탄(欷嘆)」(1922)·「단조(單調)」(1922)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1922)·「이중(二重)의 사망」(1923)·「나의 침실로」(1923)로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몽환병(夢幻病)」·「비음(緋音)」·「이별(離別)을 하느니」「가상」·「구루마꾼」·「엿장사」·「거러지」·「조소(嘲笑)」통곡(慟哭)」·「도-쿄에서」·「파-란비」·「선구자(先驅者)의 노래」·「조선병(朝鮮病)」·「비갠 아침」·「저므는 놀안에서」·「역천(逆天)」·「서러운 해조」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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