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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사

김동인 단편소설

1935년 12월 『야담(野談)』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절대미(絶對美)를 추구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액자소설이다. 주인공 솔거는 유복자에 절대미의 추구자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추남이었다. 그 때문에 두 번에 걸쳐 여자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겪고, 사람을 피해 산 속에서 30년이나 숨어 살면서 금욕과 은둔생활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평생 소원은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미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솔거는 아름다운 소경 소녀를 발견하고, 그토록 소원했던 절세 미녀도의 모델로 삼고자 한다. 솔거는 그 소녀와 함께 밤을 지샌다. 그런데 솔거는 소녀의 애욕에 불타는 얼굴에서 그가 찾는 아름다운 눈을 찾아내지 못하자 발광의 절망상태에서 소경소녀의 목을 졸랐다. 소경소녀는 죽어가..
1935년 12월 『야담(野談)』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절대미(絶對美)를 추구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액자소설이다. 주인공 솔거는 유복자에 절대미의 추구자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추남이었다. 그 때문에 두 번에 걸쳐 여자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겪고, 사람을 피해 산 속에서 30년이나 숨어 살면서 금욕과 은둔생활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평생 소원은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미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솔거는 아름다운 소경 소녀를 발견하고, 그토록 소원했던 절세 미녀도의 모델로 삼고자 한다. 솔거는 그 소녀와 함께 밤을 지샌다. 그런데 솔거는 소녀의 애욕에 불타는 얼굴에서 그가 찾는 아름다운 눈을 찾아내지 못하자 발광의 절망상태에서 소경소녀의 목을 졸랐다.

소경소녀는 죽어가면서 화구(畵具)인 벼루를 발로 찼다. 순간 그 벼루에서 그려놓았던 미녀도의 얼굴에 먹물이 튕겨졌다. 그 때문에 뜻밖에도 그 미녀도에 아름다운 눈동자가 찍혀졌다. 화룡점정(畵龍點睛) 바로 그것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숨을 거둘 때 원망으로 하얗게 뒤집힌 소경소녀의 눈동자 그것이었다. 그 후 솔거는 광인이 되어 그림을 짊어진 채 거리를 헤맨다. 이 작품에서 솔거의 행위는 아름다운 눈을 찾기 위한 발광이요, 그것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광폭적인 살인이다. 따라서 절대미를 추구하려는 데서 비롯된 탐미정신과 그것의 좌절이 빚어낸 비극이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 김동인은 가치의 선악을 꿰뚫은 미추구에의 경지를 보여준다. 즉 추악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광폭적인 탐미정신으로 추구해 가는 인간상을 소설미학으로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혹은 김시어딤.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川端畵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면서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였다. 1919년 3월에는 아우 김동평(金東平)의 3‧1운동 격문을 써준 것이 발각되어 출판법 위반 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이후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26년에는 기울어진 가산을 회복하고자 보통강 토지관개사업에 착수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9년에 춘원의 계몽주의문학관에 대립되는 예술주의문학관을 바탕으로 「근대소설고」를 발표하였고, 이듬해에는 「광염소나타」, 「광화사」와 같은 유미주의 계열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1930년부터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신문연재소설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이 대표작이다. 역사소설 중에서 특히 「대수양」과 「젊은 그들」은 세조와 대원군을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1934년 이광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작가론이라고 할 수 있는 「춘원연구」를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월간잡지 『야담』을 창간하였다. 1939년 박영희(朴英熙)‧임학수(林學洙) 등과 함께 북지황군위문작가단의 일원으로 1개월 동안 만주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1942년에는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두번째의 옥살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의 결성을 주선하는 한편, 일제 말기에 벌어진 문학인의 친일행위, 특히 이광수의 친일행위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반역자」(1946), 「망국인기」(1947), 「속 망국인기」(1948) 등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1955년에 사상계사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여러 가지 양식과 방법을 작품 속에서 실험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또한 신문학 초창기에 소설가의 독자성과 독창성을 강조하여 소설을 순수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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